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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가 당신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다” - 이승규 석좌교수
등록일 : 2022.07.01

이승규 석좌교수 편

 

 

울산의대 인문의학 강의는 예과 2학년 학생 모두 한 번씩 강단에 서서 ‘어떤 리더가 될 것인지’ 발표하는 것을 끝으로 잘 마무리됐다. 특히 교수님들과 진행한 대담 동영상에 대한 반응이 좋았는데, 리더십 이론 강의에서 언급됐던 리더십의 다양한 요소들이 대담 중에 자연스럽게 드러나 신기했다는 평이 많았다. 이번 편에서는 이승규 교수님과의 대담을 정리했다. 리더가 되는 과정과 리더로서 팀을 이끄는 원칙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서울아산병원 식구들은 어떻게 느낄지 궁금하다.

 

1989년 서울아산병원으로 합류하신 후 간이식 분야에 매진하시게 된 과정에서부터 대담을 시작하려 합니다.

1989년 당시 서울중앙병원은 약 1,040병상 규모로 개원했어요. 유명하고 전통 있는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이 이른바 ‘빅3’ 병원으로 꼽히던 때였죠. 최대 규모의 신생 병원이 출발하니 전 직원이 이 ‘빅3’에 도전해보자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저도 타 병원에 재직하다 40세가 되던 해 서울아산병원에 오게 됐어요. ‘외과 의사로서의 마지막 병원이다’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시기다’라고 다짐했습니다. 간이식 분야에 대해서는 물론 개인적인 관심도 있었죠. 한편으론 선도하는 병원이 되려면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에 도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신생 병원이니까 좋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 믿었고요. 제 은사이시기도 한 민병철 전 병원장님께서 권유하셨고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병원 초기 직원들은 모두 대단한 열정을 가졌던 것 같아요. 다들 궁금해합니다. 그런 열정은 “너 열심히 해!”라고 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닐 텐데, 그 비밀이 무엇일까요?

그렇죠. 그건 강제의 리더십이 아니었어요. 교수들에게 최대한 자율권을 주고 병원은 뒤에서 적극적으로 돕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다들 각자의 모교에 대한 향수가 있달까, 모교에서 나온 사람들 아니에요? 잠재력이 있는 교수들이 ‘우리가 더 잘해보자. 모교를 넘어보자’라는 도전의식을 갖고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충분한 지원을 하는 병원을 만났다는 것이 그 이유가 될 듯합니다.

 

간이식은 어려운 수술인데요. 초기에는 어려운 일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당시 겪었던 스트레스를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간이식에 몰입했던 초기,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환자를 떠나보내야 했던 것은 정말 큰 스트레스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이식팀 동료들 모두 ‘여기가 우리의 뜻을 펼칠 수 있는 마지막 직장이다’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된다’라는 의지가 강했어요. 실패가 있을 때에도 주저앉지 않고 오히려 다음에 같은 환자가 오면 꼭 살리겠다는 집념이 있었죠.

서울아산병원이 국내ㆍ외에 새로운 수술법을 발표할 때 우리의 시도를 비하하거나 평가절하하는 시선도 많았어요. 그러나 그 수술법들이 이제는 전 세계 간이식의 표준 술식이 되었죠. 누구나 실패할 수 있지만 다시 일어나서 계속 밀고 나가면 좋은 미래를 만날 수 있다는 신념. 그것이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힘이 됐습니다. 오히려 지식과 경험이 쌓이고 의료계에서 인정을 받는 때가 더 위험한 시기인 듯해요. 자아도취해서는 안 되고 꾸준히 주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듣고 스스로 성찰하며 항상 바뀌는 상황에 적응해야 하죠.

 

누구도 처음부터 리더인 것은 아닙니다. 팔로워로 시작해 리더가 되는 과정에 있는데요. 교수님께서는 어떤 리더의 모습을 그리셨고, 리더의 덕목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이런 말 하기 좀 쑥스럽기는 하지만, 서울아산병원에 왔을 때 간이식 분야의 스승은 없었어요. 혼자 고민하고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죠. 해외의 저명한 학자에게 팩스로 물어보기도 했어요. 어떤 수술을 보고 싶다고 팩스로 연락하면 수술 하루 이틀 전에 연락이 와요. 그러면 부랴부랴 짐을 싸서 비행기 타고 가서 수술을 보고 그 다음날 돌아왔죠. 2박 3일의 연수 코스랄까요. 그것을 스무 번 정도 한 것 같아요. 나름대로 노력을 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간이식팀 모든 구성원, 외과 의사뿐만 아니라 마취, 소화기, 감염, 영상 의사 그리고 수술실, 병동, 중환자실 간호사. 그분들이 정말 간이식을 위해 헌신적으로 도와줬어요. 그분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내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술실 간호사 선생님들이나 중환자실 간호사 선생들이 자부심을 갖도록, ‘내가 우리 간이식팀의 구성원인 당신을 좋아하고…. (적절한 단어를 찾으려는 듯 잠깐 쉬었다가)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항상 표현하려고 노력해요.

 

교수님만의 ‘루틴’, 습관이 있으신지요?

외과 의사 생활은 단조롭죠. 아침에 일어나서 회진하고 수술하며 병원에만 있죠.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건강이 중요합니다. 전 젊을 때부터 매일 조금씩이라도 운동을 했어요. 그리고 여담이지만 배우자의 뒷받침이 중요해요. 이런 생활을 이해해 주는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죠.(배우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실 때 해맑게 웃으셨다. 그 미소를 사진에서 확인하시기를.)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울산의대 학생들은 복 받은 학생들이에요. 좋은 선생님들로부터 좋은 병원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죠. 다른 의대생에 비해 훨씬 좋은 조건에서 의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젊을 때의 고생은 돈 주고도 못 산다’는 말처럼 고생을 해야 ‘파이팅 정신’이 생긴다는 거예요. 너무 순탄하게 자라 파이팅 정신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좌절하게 될 수 있어요. 일부러라도 어려운 곳에 가서 그분들을 이해하고 ‘나도 어려운 상황에서 잘 헤쳐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 경험이 필요해요. 저도 전공의를 마치고 미국 보스턴의 한 병원에 갔는데 그곳은 인종차별이 심했어요. 영어공부를 하고 갔지만 못 알아듣겠고 말도 잘 못하니 찬밥 신세였죠. 수술하는 것을 보면 별것도 아닌데…. 서럽기도 했지만 ‘내가 돌아가면 너희보다 훨씬 수술도 잘하고 좋은 병원도 만들겠다’라는 도전 정신이 만들어졌어요. 울산의대가 30년 됐고 서울아산병원도 정점에 있는 이때, 쇄신을 위해서는 울산의대 학생들이 역동성을 찾고 강해져야 해요. 편하게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이승규 교수님과의 대담을 마무리했다. 어려웠던 시기의 집념과 안정된 시기의 마음가짐을 모두 알 수 있었다. 지금 서울아산병원이 국내 최고의 병원이고 세계적인 병원임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어려웠던 시절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지만, 안정기에 접어든 지금 ‘파이팅 정신’이 약해지고 안주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서울아산청라병원 준비 등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지금이 우리의 미션과 비전을 다시 생각하며 역동성과 도전정신을 되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 이승규 교수는 1973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신영외과병원, 고려대병원 등을 거쳤고 1989년 서울아산병원 개원 시 합류했다. 간이식 분야에 매진하며 이룬 성과는 우리나라 간이식의 역사가 되었다. 1999년 변형우엽 생체간이식, 2000년 2대1 생체간이식을 세계 최초로 성공했으며 2020년 세계 최초 간이식 7,000례, 수술 성공률 98%(1년)를 달성했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의료원장을 역임했다. 울산의대 첫 석좌교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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